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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디어

미션임파서블121 나무꾼의 목숨줄

by 육트리버 2022. 12. 23.

1.나무꾼의 목숨줄

18:13 으로 나무꾼들을 살려주게 된다.

신고하지않고 비밀을 지키겠다는 서약서와 회유책으로 공산당 입당원서를 쓴다.

이 내용이 아주 달콤하다 ‘동무들은 이제 공산당에 가입한 겁네다 이북에 가면 무상으로 대학까지 보내주겠소. 통일이되면 큰형은 경기도지사에 둘째는 파주군수에 임명하겠소’ 거기에다가 선물로 손목시계까지 줬다.

그리고 나무꾼 형제들을 풀어 줬다

밤이되고 청와대쪽으로 출발한 124부대

우씨4형제는 그길로 파출소에 달려가 신고를 했다.

우씨4형제의 신고가 아니였다면 청와대습격 사건은 차질없이 진행이 돼서 초유의 국정 공백 사태가 벌어지고 지금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되었을지 알수가 없는 노릇이다.

간첩신고로 우리나라는 경계태세가 발령되어 전 부대가 무장간첩31명을 찾는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된다.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찾을 수가 없는 31명의 북한 대원들신고즉시 예상구간에 병력배치 및 통제 했는데도 흔적도 없고 찾지도 못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너무 빨라서 급속행군으로 이동을 했는데 30킬로 완전군장을 하고 앞도 보이지 않는 눈이 쌓인

산악지대를 시속10킬로로 달렸다.

그 당시 우리나라 국방부장관의 말

‘파주에서 북한산 비봉까지 행군하면 해병대도 족히 이틀은 걸리는 거리다’

‘중무장한 채로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이동할 줄은 내 군대 상식으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월21일 새벽5시 북악산

불과 청와대를 300미터 앞에 두고 최규식 종로서장에게 가로막힌 상황

그때 마침 1318버스가 오고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최초 총격전으로 아군및 민간인 사망 5명 부상4명124부대는 흩어져서 산으로 도주한다.

너무 안타깝게도 최규식 종로서장은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대통령을 암살할려고 한다는 계획을 우리도 알게 되었으니 반격에 돌입한다.

수도경비사령부,육군본부,미8군,서울시경 까지 총 출동한다

 

2.전쟁을 방불케 했던 무장공비 소탕작전

 

그날밤 새벽1시반쯤에 인왕산중턱에서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우리군이 개소리를 듣고 가보니 수상한 그림자가 보인다.

그래서 암호를 외쳤다 ‘피아노!’ 그런데 아무런 답변이 없다.적군이라는 것이다.

조용히 그 공비가 숨어있는 바위를 둘러 싸고 포위를 하고 외쳤다.

‘너는 포위됐다 포기하고 나와라’ 근데 바위뒤의 공비가 꼼짝도 안해서 우리군이 바위에 대고 위협 사격을 가했다.

‘마지막 기회다 자수해서 살길을 찾아라’그런데도 공비가 아무 말이 없다.

이 공비에게 유일한 무기라고는 자폭용 수류탄 한발 뿐이였다.

수류탄 고리를 뽑으려는 그때 생사의 갈림길에서 떠오른 단 하나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

그 공비는 순간 자신의 마음에 서글픔이 온다 ‘나는 살고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그공비의 나이는 27살이였다. 그리고 그 공비는 두 손을 들고 투항을 했다. 그 공비의 이름은 '김신조' 이다.

그뒤 대대적인 수색으로 하나 둘 잡힌 무장공비들 아무리 북한에서 최정예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라지만

이곳은 우리 홈그라운드고 또 날씨가 너무 추웠고 식량도 점점 떨어져 가고 임무수행하러 올 때와 기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래서 공비들은 대부분 사살 되거나 잡혔다.

2주 경과 청와대로부터 약 30킬로 떨어진 파주인근 1월30일 설날 파주 김노인부부가 사는 외딴집에 설날에 온

아들과 한참 얘기중인데 밖에 인기척이 들려 문을 열고 나가봤더니 무장간첩이 총구를 딱 겨누고 있었다.

‘이북에서 왔는데 밥 좀 주시오’

보니까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오른쪽 허벅다리에는 관통상 까지 입었다.

김노인은 공비를 알아보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추운데 앉으시오 마침 우리 막내가 저녁을 먹으려던 참인데 이거 드시오’하면서 돼지고기 찌개와 흰쌀밥을 내온다.

그 공비는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그때 아들이 몰래 나가 아랫집 이장에게 신고를 하고 그 사이 김노인은 막걸리도 한잔 따라 주면서

‘하룻밤 편히 쉬고 가시게’ 손과발 씻을 물도 주고 요강도 챙겨 주고 발도 손수 씻겨 주셨다.

공비가 자신은 청주 한씨이며 그리고 25살이며 ‘아바이 이 신세는 꼭 갚겠습니다 이 담에 내려올 때 로동당에 얘기해서 아바이 신세를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한 뒤 깊은 잠에 빠졌다.

그때 김노인 가족들이 모두 집 밖으로 빠져 나왔다. 벌써 집밖에는 출동한 군인들이 쫙 깔려 있고 날이 밝으면 생포할

예정이 였다. 다른 사단에서 병력이 몰려 왔는데 잠복하고 있던 병력을 공비인 줄 착각해서 총을 쏘아 버린다..(하..)

총소리에 자고있던 공비가 깜짝 놀라서 깬다‘너는 완전히 포위됐다 자수해서 살길을 찾아라’

잠시뒤 쾅! 하는 소리와 함게 방문이 떨어져 나간다.. 공비가 자폭을 한 것이다.

무장공비 소탕작전에 동원된 국군병력이 19,200명 소요된 탄알이 24만발 이다.총 15일간 소탕작전으로 무장공비 28명 사살및 자폭 국군 26명 희생 된다.

1.21사태의 일등공신 나무꾼 형제들이 받게 된 포상금은 각 20만원 그리고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했는데 이들이 말한 소원은 '마을에 전기가 들어 왔음 좋겠고 마을에 다리를 좀 놔주세요' 라고 했다. 비가 와서 물이 불면 애들이 학교를 못가니 위험하지 않게 학교를 보내기 위해 한 부탁이 였다.

1.21 사태 이후 포상금이 100만원으로 올랐다. 지금은 5억원이다.

간첩신고는 113

그런데 황당한일이 벌어진다.북한측에서 이런부대원들을 보낸적이 없다고 발뺌을 한다.

특수부대 남파사실 부인 서울에서 열혈청년들이 봉기한거다 라고 주장김신조씨는 물론이고 사살되거나 자폭한 대원들의 시신도 인수를 거부 했다.

이들의 시신은 현재 파주 적군묘지에 묻혀있다.

원래 묫자리는 해가 잘들어오는 남쪽에 있는데 이들의 묫자리는 북쪽에 묻혀 있다.

이것을 살아서 보고 있는 김신조라는 인물은 어땠을까..?

‘나는 어디 속한 사람이냐…? 속에서 화가 났다…그 사회정권은 그럴수 밖에 없다 인정을 하면서도 자기는 모른다고 할 때 내 마음이 굉장히 힘들고 괴로웠다..’

나는 국가를 위해서 모든걸 희생하고 임무를 띄고 왔는데 존재를 부인당했으니 젊은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였을 듯 하다… 북에서는 이 사람은 변절자이며 남한에서는 역적인 셈이다…

11개월간 심문을 당한 김신조 소위 1970년 4월10일에 자유의 몸이 되다.

그 수개월의 심문 끝에 김신조 소위는 총을 한발도 쏘지 않았다는게 증명이 되었다.

27세 김신조 소위는 이제 79세의 목회자가 되었다.무장공비31명중 28명 사살 혹은 자폭 2명 북한 귀한 추정

1.21사태=김신조사건 이라고 불린다.

우리 대한민국에 이 사건으로 인해서 두고두고 욕을 먹고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어떤 변화가 생겼나?

 

첫번째. 전군 제대 보류 , 휴가 중지 , 복무기간 6개월 연장

두번째. 유격훈련

세번째. 예비군 창설

네번째. 교련 수업

다섯번째. 반공 웅변대회

여섯번째. 이순신 장군 동상

일곱번째. 북악 스카이 웨이

여덟번째. 주민등록증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는게 이런일이 일어 났었다는게 신기하다.

지금에야 간첩이다 뭐다 크게 와닿진 않지만 한편으론 분단국가란 사실이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한번 인지 되는 것같다. 통일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그냥 이렇게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고 이런일이 또 일어나지 않을 거란 장담이 없으니 참으로 슬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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